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 로버트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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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핑렉스
· 2019. 3. 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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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Robert Capa(1913년 11월 22일(부다페스트) ~ 1954년 5월 25일(베트남 타이빈 성))
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여기 누가 총에 맞았어!" 누군가 소리를 지릅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찰칵 소리가 들립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로커트 카파였습니다. 카파는 자기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방금 눈 앞에 쓰러진 사람은 바로 며칠동안 함께 지냈던 병사였기 때문입니다.
카파는 1913년 11월 22일 헝가리계 유태인으로 태어났습니다. 1931년에 좌익학생운동을 하였고, 호르티 미클로시 당시 헝가리 섭정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망명하였습니다. 이때 레프 트로츠키의 연설장면을 촬영하였는데, 이것이 그의 첫 사진입니다.
이 사진으로 그는 사진 실력을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고 나치당이 권력을 잡자, 프랑스의 파리로 피신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파리에서 카파는 동료 기자이자 자신의 첫 사랑인 독일계 유태인 게르타 타로(Gerda Taro, 1910년 8월 1일 ~ 1937년 7월 26일)와 만나게 됩니다. 카파의 이름도 사실 게르타의 권유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이름을 바꾼 이유는 헝가리계라는 이유로 로버타 카파의 사진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파는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보도 사진가였습니다. 이런 끔찍한 곳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랑하는 게르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르다도 카파와 같은 보도 사진가 였습니다. 병사들이 위험하다고 말릴 때도 게르다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정말 괜찮겠소? 곧 폭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 게 겁이 났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카파는 게르다를 보며 더욱 용기를 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여인인 게르타는 그가 파리로 간 사이에 브루네테 전투를 촬영하다가 후퇴하는 공화국군의 전차에 깔려 죽고 맙니다. 그는 슬픔에 빠졌으면서도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카파의 유명한 어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쟁에서는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사랑해야 한다. 어떤 입장에든 있지 않으면 상황을 견뎌낼 수 없다."
카파는 게르다를 사랑하며 상황을 견뎌내왔고, 그 후에는 누군가를 증오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래 사진은 카파와 게르다의 사진입니다.
이후 카파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취재했고, 특히나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엔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는 부대와 함께 움직이며 전장의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마침내 간신히 되살아왔습니다. 이 사진들은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제작 시에 많이 참조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이 나고 카파는 미국 시민권을 1946년에 받게 됩니다. 그 후에도 모스크바와 키예프 등 전쟁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던 소련의 모습을 사진에 생생히 담았으며 제1차 중동전쟁의 현장에 가서도 취재를 하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에도 그는 전쟁 취재를 갔습니다. 1954년 5월 25일 오후 2시 55분, 그는 프랑스군의 행군을 취재하다가 지뢰를 밟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그가 찍은 마지막 사진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유산은 실로 엄청납니다. 물질적인 것들도 있지만 그의 정신을 기려 투철한 기자 정신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카파이즘'이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보통 로버트 카파처럼 잘 생기고 위대한 일을 한 사람들은 여자들도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로버트 카파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게르다 포호릴레스(Gerda Pohorylle)와 첫 교제를 하였고, 그와 결혼하려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게르다는 브루네테 전투에서 전차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카파는 이성과 교제는 하더라도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유명한 사랑이야기가 있는데요. 바로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사랑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위문 공연 중이었는데, 로버트카파는 잉그리드 버그만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그 후 둘은 교제를 하게 되었고 할리우드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파는 "할리우드는 내가 발을 들여놓은 곳 중 최악이었다."라고 말을 합니다. 카파는 본능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카파에서 청혼을 했지만 카파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 후 버그만과 카파는 몇번 만나기는 했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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